보면서

슈퍼맨 아니 헨리카빌 정복기(?)

@17茶 2016. 3. 2. 00:03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지만 난 히어로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

히어로물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 봤던 게 팀 버튼의 배트맨이고 (결국 이 시리즈는 조지 클루니의 배트맨까지 다 봤었음. 빌 킬머가 나왔던 배트맨은 꽤 좋아했었다. 니콜 키드만이 너무 예쁘게 나오니. 발 킬머도 멋있었고. 이 영화의 영향으로 나중에 발 킬머의 세인트도 봤었지)
나중에 크리스 놀란의 배트맨은 예전 추억 때문에 봤다가 다크나이트 때부터 그 압도적인 작품성에 사로잡혀 (+ 크리스찬 베일의 미모 또한) 3편까지 봤었고.

두번째 시리즈가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이야 원래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알던 캐릭터니 샘 레이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전부 보게 됐었다.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1편은 보긴 봤는데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고. 그래서 2편은 안 봤다.

슈퍼맨은 왠지 안 끌려서 어렸을 때 TV에서 해줄 때나 왔다갔다 하면서 봤었지 제대로 자리잡고 앉아서 본 적은 없다.
SBS에서 해줬던 미드 로이스&클락 시리즈는 사실 로맨틱코미디물이나 다름없어서 좀 보긴 했는데 학생 땐 TV 보는 걸 싫어하셨던 엄마 때문에 이것 또한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클락이 슈퍼맨이라는 걸 로이스가 안 뒤의 얘기.
커플이 투닥투닥 싸우다 화가 나서 각자 알아서 집에 가는 장면. 로이스가 어떻게 갈 거냐고 묻자 클락도 삐쳐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날아서 혼자 가겠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로이스도 아하~ 빈정거리며 휙 몸을 돌려 집에 가던 거.

위 작품들을 제외하고선 크게 흥미가 없어서 관심두질 알았다. 특히나 히어로물은 대체적으로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는 설정들이라 저 위의 작품들이라 해도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면 안 볼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은 우리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대중적인 추억의 캐릭터들이었지. ......보긴 보겠다;)

그래서 영화를 꽤나 자주 본다고 하는 편인데도 어느날 (내겐) 듣보 배우이름이 회자되고 인기배우가 되는 과정을 보면 그 계기가 히어로물인 배우들이 많다. 게다가 난 영화 보는 편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장르는 굉장히 편식하는 편이라. 별로 안 좋게도.

4년 전 맨오브스틸은 만약 크리스 놀란이 제작을 맡지 않았으면 100% 안 볼 영화였다. 말했듯이 저 히어로물 중에 제일 관심없었던 게 슈퍼맨이었으니까.
그래서 의무감에 억지로 예매하고 왕십리 아이맥스로 개봉일에 보러 갔는데 설상가상 영화 시작 전부터 안 좋던 몸이 시작하고 약 10분만에 급격히 나빠져서 제대로 보질 못 했다. 사실 영화를 포기하고 나갔어야 했을 상황이었는데 동행인한테도 미안했고 더 정확히는 거길 걸어나갈 상황조차 안됐었지. 하필 자리도 앞쪽이라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과 소리가 거의 고문수준. 영화 끝날 때까지 눈 감고 몸을 웅크리고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귀도 막고 싶었는데 그럴 기운도 없었고.
그래서 맨오브스틸하면 기억나는 게 내가 땀 흘리며 앓았던 거, 그래서 돈과 시간을 날린 거, 그리고 영화 상영 내내 엄청나게 싸우고 때려부수던 소리뿐이었다. 정말 끊임없이 때려부셔서 나중에는 그 소리가 멍하게 들릴 정도였다. (후에 어디서 영화 평을 보니 액션신 강도를 조절을 못 해 좀 지루하게 느껴지긴 했다고 하더라)
제대로 못 봤으니 나중에 한 번 더 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생각뿐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정말 보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었으니.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맨오브스틸 속편 얘기가 나오더니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는 얘기에 놀랐었음. 그 때려부수기만 하던 영화가 속편이라니;) 어느 순간부터는 배트맨 vs 슈퍼맨으로 확정이 됐다고 해서 정말 적응이 안됐다.

미국 히어로물을 마블과 DC가 거의 양분하고 있다는 것만 겨우 알고 있는데 그 둘이 같이 나온다니? 각각의 다른 만화 주인공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해서 공부를 좀 하고 나서야 마블의 어벤저스라던가 DC의 저스티스리그에 대해 좀 알게 된 것이다. 한 개의 작품이 아니라 세계관이 통일돼 아예 하나의 장르물처럼 협업이 되고 있다는 걸.

어쨌든 벤 애플렉을 그다지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배트맨이 나온다니 그 영화는 봐야겠는데 슈퍼맨이랑 같이 나오고 그게 맨오브스틸 후속편처럼 나온다면 맨오브스틸을 다시 봐야 내가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겠는가.
(난 시리즈물을 볼 때 앞뒤 정황을 파악하고 보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이라 (감독들이 앞편을 안 봐도 이해에 대해 크게 무리가 없다고 해도 앞편을 보고 간다) 이런 영화를 중간부터 보게 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드는 타입; 그래서 토이스토리 3편을 뒤늦게 보기로 결심하고 예매를 한 뒤 기어이 3일만에 1-2편을 다 보고 갔었다. 이런 식의 관람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던게 바로 어벤저스 2편을 보기로 했을 때였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본 유일한 마블 영화는 스파이더맨뿐이었다. 이하 생략;)

그래도 그동안은 생각만 할 뿐 실천에 옮기질 않았는데 넷플릭스에 맨오브스틸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그리고 그 전에 맨프롬엉클이 있었다.

......그렇다.

쫄딱 망한 영화인 거 알고 극장에 보러 갔는데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배우라고 생각하다가 거의 중반부쯤 가서 떠올렸다. 슈퍼맨이라는 걸.
영화야 그저 그랬으니 극장에서 두 번 볼 생각은 안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남자가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넷플릭스였다;
어느날 맨오브스틸이 올라왔고 그걸 틀기 시작해 거의 십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오늘 끝을 맺었다. 아무리 배우가 멋있어도 히어로물 특히 슈퍼맨은 내가 정복하기 너무 힘든 영화였다.

이제 배트맨 vs 슈퍼맨은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겠으나 내 안에 커져가는 헨리카빌에 대한 애정은 점점 무거워지리라.

5분 50초부터.

p.s.
유일하게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닌 호기심에 자발적으로 본 최근 마블 영화는 앤트맨이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마이클 더글라스 때문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