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구레

집에 화재가 날 뻔 했습니다.

@17茶 2007. 4. 1. 11:16

3월 30일 저녁에 좀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네요.
이제서야 진정을 하고 글을 좀 쓰려고 하긴 하는데..
사실 아직도 진정이 된 건 아닙니다만.

요지는,
집에 불내고 저도 불에 타 죽을 뻔 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더 끔찍한 건 부엌에 불이 나고 있었는데
전 모르고 계속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고요,
(입 밖에 내서 말하면 제가 바보같아 죽을 것 같거든요)
어쨌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빛이 벽에 반사해서 뭔가 아른거렸거든요.
근데 전 거실 전등을 끄고 TV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TV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세 번 반복되자 뭔가 TV하고 타이밍이 안 맞는 것 같아
혹시나 하고 부엌으로 갔더니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급하게 싱크대의 수돗물을 틀어 불을 껐는데(샤워기처럼 되어있습니다)
불이 얼추 꺼졌는데 전 넋놓고 있어서
아직 불이 다 꺼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한 번 더 정신차려서 물을 틀어 불을 껐는데
정말 꼼짝을 할 수 없더라고요.

발 밑에는 기름이 흥건했고 전 손에 핫도그를 들고 있었는데
불을 끄고 난 후 그 상황에서 계속 핫도그를 먹고 있었어요.
정말 뭘 해야할지 몰라서요.
제가 몸이 굳은 것도 있지만,
기름 때문에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이 핫도그를 어디에 둘 수가 없었거든요.
부엌 한가운데라.
일단 이걸 먹어치우고 생각을 해야겠다 싶었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부엌은 이미 까맣게 되어있더라고요.
며칠전에 산 유리컵 입 닿는 부분이 녹아있었고요.
싱크대에 있던 플라스틱들은 다 녹아서 유독성 냄새가 진동..

일단 바닥의 기름부터 대충 닦고 싱크대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손이 덜덜덜 떨리더군요.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저 혼자 다치거나 죽는 것만이 아니라
아파트 윗층에도 불이 번졌을지 몰라요.
게다가 천정을 보니 그을음이 불길 모양대로 생겨서
아까 그 무서운 불길이 생각나고
이 불이 확산됐다면..하는 생각이 계속 나니까
무서워서 더이상 정리를 할 수 없었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랬다간 앞일이 안 봐도 비디오죠.

결국 방에 들어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때가 자정이더군요.
통화가 됐는데 그제서야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10분만 울면서 통화를 하니 좀 진정이 되고
통화하던 사람도 일단 정리는 내일 하고 일단 자라고 하길래
불 다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눈 앞이 번쩍번쩍 하더라고요.
그때 제 심장이 아마 발바닥까지 떨어졌다 다시 올라왔을 겁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뜨니 밖에서 번개가 친 거였어요.
원래 천둥.번개 안 무서워하는데
방금 이런 일이 생겼으니 놀랄 수 밖에요.

어찌어찌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부엌에 가봤는데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할지 정말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게다가 아침밥을 차리는데 가스불은 무서워서 도저히 불 붙일 수가 없었어요.
결국 야채만 갖다놓고 밥을 먹었죠.

밥을 먹고 부엌을 훑어봤는데 찬장 안에까지 그을음이 져서
식기들도 거뭇거뭇하길래 다 꺼내서 물로 헹구고
찬장 안도 닦고...
의자 갖다놓고 천장도 닦았는데 여긴 도저히 안 닦이더군요.
앞으로는 무서워서 천장 볼 수 없을 듯.

바닥은 아무리 닦아도 기름기가 안 가셔요.
밀가루도 뿌리고 닦았는데도 어느 정도 이상은 더이상 좋아지지가 않더라고요.
정말 세제를 뿌려서 닦을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심장이 쿵쿵 뛰고 아찔합니다.
그나마 오늘은 출근을 해서 그런지
집 안에 있는 것보다는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황사..OTL)

불이 난 이유가요...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땐 제가 지켜보고 있어서 바로 불을 껐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나고 그때 일도 바로 해결이 되서 그랬는지 까먹은 거예요.
정말 바보같죠.

이번엔 일이 크게 났으니
아마 평생동안 잊지 않을지도...
제발 그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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